개인정보 유출이 일상이 되어버린 2025년, 천문학적인 과징금과 강화된 규제 속에서도 사고는 왜 반복될까요? 단순한 법적 의무 준수를 넘어,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디지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 방안을 심도 있게 분석했습니다.
1. 유출이 일상이 된 시대, 과징금 폭탄은 기업을 구할 수 있을까요?
2025년 현재,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개인정보 유출 사과 문자를 받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통계만 보더라도 상황의 심각성은 명백합니다. 최근 5년간의 추이를 볼 때 유출 신고 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특히 2023년 약 1,000만 건이었던 유출 규모는 2025년에 이르러 대형 통신사와 쇼핑몰의 사고를 합산하면 수천만 건에 달할 정도로 대형화되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대형 사고가 발생한 기업들 대부분이 정보보호 및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ISMS-P) 인증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기존의 관리 체계만으로는 고도화되는 위협을 막기에 역부족임을 시사합니다. 이에 규제 당국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통해 전체 매출액의 3%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제재 수위를 높였습니다. 실제로 최근 발생한 대형 유출 사건들에서는 수십억 원에서 천억 원대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되거나 예고되고 있습니다. 이제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한 보안 사고를 넘어, 기업의 재무적 리스크를 극대화하고 운영 자체를 위협하는 경영상의 핵심 위기가 되었습니다.
2. CEO가 직접 챙겨라? 정부의 칼끝이 향하는 곳
반복되는 사고에 대응하여 정부는 개인정보 안전관리 체계 강화 방안과 범부처 정보보호 종합대책을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단순히 기술적 보호 조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정부는 현행 법령상 안전조치가 최소의무 기준에 머물러 있고, 기업들이 법적 의무만 준수할 뿐 실질적인 보호 투자는 낮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CEO를 개인정보보호의 최종 책임자로 명문화하고, 개인정보보호책임자(CPO)가 이사회에 연 1회 이상 보고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상시적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습니다. 또한, 대규모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전문 CPO 지정을 의무화하여 전문성을 높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정보보호가 실무자 선에서 처리될 문제가 아니라, 경영진이 직접 챙겨야 할 핵심 아젠다임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3. 무늬만 임원인 CPO는 가라! 금융권 준법감시인 모델이 답이다
정부의 대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탑 다운(Top-Down)’ 방식의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컴플라이언스는 최고경영자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조직 내에 정착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 많은 기업의 CPO는 실질적인 권한 없이 이름만 걸어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금융권의 ‘준법감시인’ 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준법감시인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선임되며, 임기가 보장되고, 재무적 성과와 연동되지 않는 별도의 보수 지급 기준을 갖습니다. 이는 준법감시인이 독립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반면, 일반 기업의 CPO는 이러한 보호 장치가 부족하여 경영진에게 쓴소리하거나 적극적인 내부 통제를 수행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CPO가 형식적인 지위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인 독립성과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임명 절차와 신분 보장을 강화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합니다.
4. 인증 마크의 함정: ‘스냅샷’ 점검을 넘어 ‘PDCA’로 나아가야
많은 기업이 ISMS나 ISO 인증을 획득하는 것을 보안의 목표로 삼습니다. 그러나 인증 제도는 특정 시점의 상태를 점검하는 ‘스냅샷’과 같습니다. 문제는 개인정보보호가 일회성 시험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연속적인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인증 심사 시즌이 되면 실무 부서가 아닌 인증 담당 부서 몇몇 직원들만이 서류 작업에 매달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전사적인 보안 의식 내재화와는 거리가 멉니다. 진정한 보호 체계는 계획(Plan), 실행(Do), 점검(Check), 개선(Act)이 반복되는 PDCA 사이클이 조직 전체에서 살아 숨 쉴 때 완성됩니다. 따라서 정부가 사고 발생 시 인증을 취소하겠다는 사후적 제재보다는, 인증 유효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유지 여부를 점검하거나 현업 부서의 실질적인 이행도를 평가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인증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합니다. 보여주기식 인증이 아닌, 살아있는 보안 프로세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5. 벌금 내면 끝? 진정한 신뢰 회복을 위한 ‘3년의 약속’
현재의 과징금 부과는 기업에 큰 재무적 타격을 주어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는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1회적인 제재에 불과합니다. 과징금을 냈다고 해서 기업의 보안 체질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고가 발생한 기업이 진정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단발성 처벌을 넘어 장기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중대한 안전조치 의무 위반 기업에 대해서는 3~5년 정도의 ‘이행점검기간’을 설정하는 방안을 제안합니다. 감독관청이나 외부 독립기관이 장기간에 걸쳐 기업이 시정명령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새로운 보안 프로세스가 조직 문화로 정착되었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환자가 큰 수술을 받은 후 장기간의 재활 치료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단순히 벌금을 내고 사건을 덮는 것이 아니라, 뼈를 깎는 체질 개선 과정을 통해야만 기업은 잃어버린 ‘디지털 신뢰’를 다시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